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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기념일 : 의미, 역사, 김구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by ㈜골디로저 2023.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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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3월 1일 삼일운동 당시 독립선언을 계기로 설립된 첫 정부구성체로 경술국치와 한일병합, 그로 인한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 독립운동을 주도한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 설립 결사체입니다.

 

창립

 

한일병합조약으로 대한제국 황제 순종이 대한제국 주권을 일본 제국에게 양도한 행위는 무효이며, 포기한 주권은 대한국민에게로 승계되었다는 정신이 확립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파리 강화 회의가 열리고 신한청년당은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김규식)를 파견하여 2.8 독립 선언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소식과 시대적 상황이 조선군중들에게 전해졌고, 이에 군중들은 독립에 대한 희망을 품어 3.1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3.1 운동의 결과, 상하이에서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을 창설했습니다.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이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였습니다.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헌장(10개조)을 제정하고 이승만을 초대 국무총리로 하여 상해임시정부를 결성하였습니다.


상해임시정부 당시 사진

 

활동

 

임시정부는 군사활동의 일환으로 독립군단체를 지원했습니다. 이것이 이후 육군무관학교와 비행사양성소, 간호학교까지 이어지면서 결국 광복군까지 창설했습니다. 임시정부는 의열투쟁에도 참여했습니다. 의열 투쟁은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대표적입니다. 

 

의의

 

독립을 위해 수많은 항거를 계획했고 실천한 임시정부였지만, 광복 이후 국내외 혼란으로 인해 임시정부의 직접적인 내각과 정책은 새로운 정부에 계승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임시정부의 정신과 법통은 대한민국헌법에 전승되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헌법 전문 中-

 

 

 

 

임시정부 그 자체 : 김 구 (본명 김창수)

 

백범 김구

생애

 

김구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1세대 민족주의 정치가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 중에서 안창호, 여운형 등과 함께 독립 지도자 중, 최순위권에 손꼽히는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입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서 18세의 나이로 독립운동에 처음 투신했고, 대한제국이 망하기 전까지는 민중에 대한 교육계몽운동에 투신했으며, 조국이 일제에 병탄된 이후에는 농촌계몽운동과 소작쟁의를 참여하고, 3.1운동이 터지자 만세운동에 참여하셨습니다. 만세운동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자 1919년에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직접 참여하였고 광복의 그날까지 임시정부 요직에서 계속 복무 하였습니다. 

 

1940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각에서 임시정부 주석에 선출된 후, 일제가 항복하는 1945년까지 광복군의 통수권자인 임시정부 주석직을 역임 하셨습니다. 해방 이후 조국과 겨례가 반목하지 않아야 된다는 일념하에 공산주의를 극렬히 싫어했던 자신의 신념을 내려놓고 공산주의자들과 대화하면서까지 남북분단을 막으려고 했으나 실패하였습니다. 결국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막지 못하고, 1949년 서울 경교장에서 반대 세력(안두희)에 의하여 암살되셨습니다.

 

업적

 

1) 계몽운동과 인재양성

2) 임시정부의 주석, 광복군 통수권자

3) 을사조약 무효 상소운동 전개

4) 일제시대 다양한 애국단체 설립 운영

5) 신탁통치 반대 및 남북단일정부 수립 노력

 

 

지금도 회자되는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전문을 싣습니다. 시간날 때 곱씹어가며 읽어본다면 단순히 김구 자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대한민국 정치지도자로서 그가 원했던 대한민국의 구체적인 모습이 구구절절 쓰여져 있어 큰 울림을 줍니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 김 구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文化)의 힘이다.  
문화(文化)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달하기에 넉넉하고,  
국토의 위치와 기타의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또 1차, 2차 세계대전을 치른  
인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의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의 완비다.  
내가 위에서  
자유의 나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할 민족은  
일언이 폐지하면, 모두 성인(聖人)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大韓)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춘풍(春風)이 태탕(鋏蕩)하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 국민 각자가 한번 마음을 고쳐먹음으로써 되고,  
그러한 정신의 교육으로 영속될 것이다.  
최고 문화(文化)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 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다.  
사랑하는 처자를 가진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함이다.  
힘드는 일은 내가 앞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네가 좋아하던 인후지덕(仁厚之德)이란 것이다.  
 
이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산에는  
삼림이 무성하고 들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며,  
촌락과 도시는 깨끗하고 풍성하고 화평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동포, 즉 대한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는 항상 화기가 있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를 발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불행하려 하여도 불행할 수 없고,  
망하려 하여도 망할 수 없는 것이다.  
민족의 행복은 결코 계급투쟁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개인의 행복이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은 끝없는 계급투쟁을 낳아서  
국토의 피가 마를 날이 없고,  
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하면  
천하가 이기심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법이다.  
일본의 이번 당한 보복은  
국제적·민족적으로도  
그러함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실례다.  
이상에 말한 것은  
내가 바라는 새 나라의 용모의 일단을 그린 것이어니와,  
 
동포 여러분!  
이러한 나라가 될진대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네 자손을 이러한 나라에 남기고 가면  
얼마나 만족하겠는가.  
옛날 한토(漢土)의 기자(箕子)가  
우리나라를 사모하여 왔고,  
공자(孔子)께서도  
우리 민족이 사는 데 오고 싶다고 하셨으며,  
우리 민족을 인(仁)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였으니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는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나도 일찍이 황해도에서 교육에 종사하였거니와  
내가 교육에서 바라던 것이 이것이었다.  
내 나이 이제 70이 넘었으니,  
직접 국민교육에 종사할 시일이 넉넉지 못하거니와,  
나는 천하의 교육자와 남녀 학도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먹기를  
빌지 아니할 수 없다. 

 


1947년, 샛문 밖에서
백범(白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