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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28일 충무공이순신탄신일 : 이순신의바다 요약, 독후감, 영화 명량 한산 리뷰, 가볼 만한 곳 추천

by ㈜골디로저 2023.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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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이순신 탄신일 의미와 역사

 

대한민국의 성웅 이순신의 탄신을 기리는 기념일입니다. 1967년 1월 6일, 공보부가 4월 28일을 '이충무공 탄신기념일'로 제정하였고 1973년 3월 30일에 법정기념일로 확정하였습니다

 

민족의 성웅인 충무공 이순신의 애국 위훈을 길이 전승하고, 민족자주정신을 선양할 목적으로 충무공 이순신의 탄신일인 1545년 4월 28일을 기념해 제정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기념일 중 위인들의 생일에서 따온 두 기념일 중 하나로 나머지 하나는 세종대왕의 생일인 스승의 날(5월 15일)이 있습니다. 스승의 날은 스승의 은혜를 감사하자는 취지가 더 널리 통용되는 만큼 실질적으로 탄신 기념일은 이순신 장군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념일 행사는 대한민국 국방부가 주관하지만, 주요 행사는 대한민국 해군을 주축으로 이루어집니다. 해군은 행사 당일 기항 중인 함정마다 만항식을 거행해 성웅(聖雄)의 탄생을 경축합니다. 부대 별로 이순신 유적지 참배, 부대 개방 행사, 초빙강연, 마라톤이나 행군도 실시하고 해군 본부 장성 및 주요 참모들은 아산시 현충사 참배를 통해 이순신의 우국충절을 기리는 행사도 더해집니다. 현충사는 이 날 무료 개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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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위상과 정신

 

오늘날 대한민국은 수많은 국민들이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있지만 단연 이순신이 최고입니다. 세종대왕과 함께 한국사 최고의 위인으로 높은 위상과 명성을 자랑하는 인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 광화문 광장에 세워져 있는 대형 동상의 주인공입니다. 이순신이 더 추앙받는 이유는 정부와 외부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반대로 이순신이 정부와 명나라 육군에게 식량, 무기, 종이, 부채, 조총 등 각종 물자와 진상품을 지원해야 하는 처지였다는 점, 몰려드는 피난민들의 생계까지 직접 돌보면서 힘겹고 외롭게 전쟁을 수행해야 했으며 심지어 권율 휘하의 육군이 허락도 없이 이순신이 어렵게 마련한 수군이 먹을 식량을 시도 때도 없이 약탈하고 수군 병력을 마음대로 빼내어 육군으로 편입시키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노력만으로 자급자족하며 전쟁을 지휘했다는 점, 휴전기 당시 수군 기지에 전염병이 크게 퍼져 막대한 병력 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군비를 꾸준히 확장하여 최강의 함대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7년간 수군을 이끌고 뛰어난 지략과 용맹함을 발휘하여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끝에 군함을 단 한 척도 잃지 않고 23전 23승 불패의 신화라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전무후무한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이순신은 제해권을 장악, 임진왜란의 불리한 전황에서도 적의 보급을 완벽히 차단해 전쟁의 흐름 자체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임진왜란 초기 2차 출동 당시 첫 해전이었던 사천 해전에서 전투를 지휘하다가 적이 쏜 총탄에 왼쪽 어깨를 관통당해 중상을 입는 큰 부상을 당하여 피가 발꿈치까지 흐르는 상황임에도 전투가 끝날 때까지 고통스러운 기색도 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지휘했으며, 칼로 살을 찢어 박혀 있는 탄환을 제거한 뒤 부하들과 평소처럼 담소를 나눴다는 일화는 그의 영웅성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에서 철수하는 일본군 함대 500척을 추격하여 퇴각로를 차단한 뒤 맹렬하게 공격을 퍼부어 왜선 200척을 깨부수고 100척을 포획하며 일본군 수만 명을 처치하는 큰 전과를 올렸으나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한 최후를 맞은 불세출의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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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생애


1545년 한성부 건천동에서 태어나 1576년(선조 9) 식년 무과에 병과 4위로 급제하여 그해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이 되었고, 1579년에는 훈련원 봉사가 되었습니다. 1580년에 전라도 발포 수군 만호, 1581년에 경차관 서익에 의해 파직, 1582년에 다시 훈련원 봉사로 복직되었고 1583년 함경남도 병마절도사 군관, 함경도 건원보 권관을 지내다가 3년간 부친상을 치르고 나니 1586년 함경도 조산보 만호에 임명되었습니다. 그 해 여진족의 기습을 받아 일부 백성이 납치되고 녹둔도 전투를 치렀습니다. 이 일로 경비 소홀에 책임을 물어 파직 및 백의종군 처분을 받았으나 1588년 시전부락 전투에서 세운 군공으로 복직되었습니다.

1589년에 전라 감사의 군관이 되어 정읍 현감에 제수, 백성을 다스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도 군수, 배포 첨사 임명장을 받고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됩니다. 일찍이 일본의 침공을 예상하고 전함 건조, 무기와 군비 확충, 군사훈련 등에 힘쓰던 중 마침내 1592년에 일본군의 침공이 시작되었습니다.

 

옥포 해전과 합포 해전, 적진포 해전, 사천 해전과 당포 해전, 당항포 해전, 율포 해전에서 승리했습니다. 한산도 해전에서 크게 승리하고 안골포 해전에서도 승리했습니다. 두 달여 뒤에 재출병해 부산포 해전에서도 승리했습니다. 이어 1593년 웅포 해전에서 승리하고 본영을 여수에서 한산도로 옮겨 삼도 수군 통제사로 선임된 후 1594년 당항포 해전에서 승리했습니다.

 

1597년에 체포되어 상경한 후 투옥되었고, 선조가 사형에 처하려 했으나 정탁이 변호하며 두 번째 백의종군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후 모친상을 겪었으며 원균이 출전한 칠천량 해전에서 그간 육성해온 군과 자산을 거의 궤멸당했으나 통제사 재임명을 받아 들였습니다. 소수 병력으로 출전한 명량 해전에서 또 승리했습니다. 셋째 아들 이면이 전사했고, 1598년 마침내 조선에서 철군하는 일본군을 추격하여 노량 해전을 치르던 중 총탄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순신의 바다 (가장 좋아하는 역사학자 황현필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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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바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의 일화는 난중일기를 통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장군은 본인의 기록 뿐 아니라 당시 조선의 기록을 많이 남겼는데 역사적으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큽니다. 임진왜란을 현대에 맞게 재조명하고 하나하나의 전투를 어디서 어떻게 치루어냈는지를 담아낸 책이 바로 황현필 선생님의 "이순신의 바다" 라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 봤으면 좋을 책입니다. 

처음에 구매했을 때 400페이지의 양에 압도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술술 읽힙니다.

이순신의 바다라는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내가 마치 임진왜란이 일어난 한복판에 서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삽화에서 적과 이순신함대에 배치와 병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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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해전

 

 

그리고 단순히 위인의 영웅일대기를 그려넣다기 보다는 그 당시의 이순신의 실제 고민, 전략상 난맥 등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논리적인 결정과 논리적이지 않지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시대상황을 풀어 설명하면서 나였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수도없이 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이순신 장군의 전략 전술은 따라할 수 없을만큼 위대합니다. 거짓말같은 전과입니다.

특히 이순신의 바다에는 빌런으로서 원균이 얼마나 무능하고, 질투가 심했는지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선조의 무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시상황 자체도 암울했지만 이런 임금과 이런 동료를 가진 상태에서 이순신의 대처방법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교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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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 선조

이순신의 바다는 임진왜란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별 5개, 신하로서의 이순신과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장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별 5개, 내 자녀에게도 읽히게 하고 싶다는 점에서 충분히 구매가치가 있고 돈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꼭 사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영화 : 명량 / 영화 : 한산 / 리뷰(장면리뷰)

 

명량 : 회오리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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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임진왜란 6년, 오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 뿐.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마저 불타고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류승룡)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인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압도적인 수의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이순신 장군은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바다를 향해 나선다.

12척의 조선 vs 330척의 왜군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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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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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VS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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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이순신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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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하는 조선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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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민들의 협공

 

한산 : 용의 출현 리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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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단 15일 만에 왜군에 한양을 빼앗기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다.

조선을 단숨에 점령한 왜군은 명나라로 향하는 야망을 꿈꾸며 대규모 병역을 부산포로 집결시킨다.

한편, 이순신 장군은 연이은 전쟁의 패배와 선조마저 의주로 파천하며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조선을 구하기 위해 전술을 고민하며 출전을 준비한다.

 

하지만 앞선 전투에서 손상을 입은 거북선의 출정이 어려워지고,

거북선의 도면마저 왜군의 첩보에 의해 도난 당하게 되는데.

 

왜군은 연승에 힘입어 그 우세로 한산도 앞바다로 향하고,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운명을 가를 전투를 위해 필사의 전략을 준비한다.

 

1592년 여름, 음력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한 조선의 운명을 건 지상 최고의 해전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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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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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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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한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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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위의 성벽, 한산도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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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등장 압도적 승리

 

이순신 여행지 추천 (남해안 놀러 갈만 한 곳) 

 

아산 현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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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입구

 

이순신 장군의 유년시절을 보낸 아산입니다. 이순신장군의 영정이 모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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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장군 묘

 

여수 이순신대교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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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이순신대교

 

여수는 도시 자체가 구경할 곳이 많고 즐길거리도 많아 굳이 이순신여행이 아니더라도 연인가족과 함께 꼭 가봐야할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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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바다

 

통영 바다(한산도 대첩지, 통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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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공

 

통영바다는 아름다워 후회하지 않을 관광도시입니다. 통제영도 구경하신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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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영 = 해군본부

 

이외에도 거제바다, 남해 충렬사, 완도 고금도 등 남해에 가시면 이순신장군의 흔적을 이곳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