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 홍범도
먼 거리에서 총을 쏴 유리병의 입구를 통과해 병의 바닥을 맞히는 사격 실력을 보유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실력으로 일대 포수들에게 지지를 얻고 '포계(砲契)'라는 포수 권익 단체를 만들어 대장이 되었습니다. 1895년 을미의병 발생 직후 강원도 회양군에서 김수협과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사냥을 그만두었을 때도 '이 총으로 짐승이 아닌 왜놈들을 사냥하겠다'는 다짐으로 구국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홍범도는 최대 600명~700명으로 생각되는 의병대를 이끌고 주로 함경도와 강원도 북부를 무대로 하는 독립무장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이 시기 일본 헌병대 및 일본 육군 정규부대를 상대로 크고 작은 37회의 전투를 벌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08년 04월 아내 이옥구(이옥녀)가 일제에 체포되자 남편인 홍범도에게 귀순을 권유하는 편지를 쓰라고 협박하니,
"계집이나 사내, 영웅호걸이라도 실낱 같은 목숨 없어지면 그뿐이고, 내가 그런 글을 쓰더라도 영웅호걸인 그는 듣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나더러 시킬 것이 아니라 너희 맘대로 해라. 나는 죽어도 안 쓴다."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
1920년 6월, 일본군이 19사단 병력과 남양수비대로 독립군 본거지인 봉오동을 공격합니다. 이때 홍범도 장군은 700여 명의 독립군을 지휘하여 3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립니다. 일본군을 상대로 승전한적이 없었던 독립무장투장의 역사상 이 봉오동전투는 그때까지 독립군이 올린 전과 중 최대의 승전으로 기록됩니다. 같은 해 9월에는 청산리전투에서도 제1연대장으로 참가해 승전을 이끌었습니다.
호랑이 별이 지다
이후에도 레닌 정부의 협조를 얻어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독립군의 실력양성에 힘썼으나, 같은 해 6월 소련 당국의 한국독립군에 대한 무장해제령으로 빚어진 자유시사변을 겪은 뒤 이르크츠크로 이동하였습니다. 이 연해주에서도 집단농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한인들의 지도자로 존경받았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이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하여 1937년 연해주의 고려인들을 대대적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켜버리고 강제이주에 반발하는 지도급 인사나 군 장교를 약 2800명을 숙청해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69살의 노인 홍범도 장군은 다행히 살아 남았지만 이미 우리안에 갖힌 늙은 호랑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로 강제이주된 홍범도 장군의 말년은 극장의 수위로 일하고, 주간에는 정미소의 근로자의 일생을 보냈습니다. 결국엔 조국의 광복을 바로 눈 앞에 둔 1943년 10월 25일 76세를 일기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부인은 일본군에 붙잡혀 고문으로 숨지고, 장남은 전사하였으며, 차남은 전투중에 병사했습니다. 온전히 가족 전체가 모든 것을 조국 해방에 바친 독립운동가입니다.
홍범도와 공산당
홍범도가 훗날 공산주의 독립운동 단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였습니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혁명의 저지를 위해 시베리아 내전을 벌일 당시 일본군이 연해주에 진주하면서 무장독립군을 소탕하려 계획합니다.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소련 적위군과 손을 잡게 되었는데, 이것이 홍범도와 소련 공산당의 첫 만남입니다.
홍범도, 자유시 참변
스탈린이 일본의 눈치를 보고 대한민국의 무장독립운동단체들의 무장해제를 요구할때 홍범도 장군은 처음엔 반대하다가 소련군의 행태를 살피고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를 따르자고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수많은 독립군이 이에 마지막까지 반대하면서 무력진압을 시작했고 수천명의 독립운동인사가 당시 살해당했습니다.
이때 홍범도장군이 공산당과 손잡고 독립군 몰살에 동조한거 아니냐는게 뉴라이트의 의혹이자 업적을 깎아내리는 논리전개입니다.
하지만 위의 사실들에 의하면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고, 홍범도 장군은 자유시 참변에서 한 일이 없습니다. 뉴라이트계열에서 홍범도에게 덮어씌우던 자유시 참변의 누명은 명백한 역사적 오류입니다. 홍범도와 휘하의 독립단체들은 이미 자유시 참변당시에 무장해제를 한 상태였기에 사상자가 없었고, 자유시 참변의 소식을 전해듣고 장교들과 솔밭에 모여 땅을 치며 통곡했다고 전해집니다.
뉴라이트가 홍범도 흉상을 철거해야하는 이유
2000년대부터 급격히 세를 불려온 뉴라이트는 그 전까지 보수전반을 지배하던 주류였던 올드라이트보다 더 극우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뉴라이트 사관은 다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조선에 대한 폄하와 권위주의 독재에 대한 이중적인 찬양
조선은 미개하며, 국민성도 미개해 일본과 같은 선진문명에 세계사적 관점에서 흡수될 수 밖에 없었다는 자학성이 기본 틀구조입니다. 거기다 미개한 국민들을 엘리트가 독재를 통해 이끌어야 한다는 선민의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2) 식민지 근대화론
조선이 병합된 것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당연한 것임을 미리 밝히고, 일본의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대한민국이 근대화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로써 식민지는 정당했고, 대한민국에게는 좋은 일이었다고 미화하는데 온 힘을 다합니다. 이에 더해 독립운동은 아무 이익이 없는 행위였다고 폄하하는데 여기서 그들의 열등감을 들춰볼 수 있습니다.
이들로서는 독립운동가가 눈엣 가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과 미국이 대한민국을 이만큼 살게 해줬는데 아무 이익이 없는 행위로 판단하는 독립운동정신이 우리 헌법에 고스란히 녹아있고 오히려 존경을 강요하니 이만큼 뉴라이트 입장에서 미치고 팔짝뛰는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제시대 대한민국의 독립엔 관심없고 오로지 물질을 탐했던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단순히 숨기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일으켰다는 자부심으로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함으로서 반대로 비난하고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되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홍범도 장군이 불편합니다. 김구도 불편합니다. 유관순도 불편합니다. 신채호도 안창호도 불편합니다. 자신이 하지 않았던 국가에 대한 희생을 기꺼이 감내했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으로 지금의 홍범도 흉상사건을 바라봐야 전체가 보입니다. 사실 보수우파 내에서도 한줌도 안되는 뉴라이트 세력이 현재의 정권을 운영하고 있고, 전국민은 그 한줌의 세력이 하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들을 두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셈입니다.
문재인 정부당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행사
홍범도 장군님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평생을 아내와 자식을 잃으면서 독립에 투신하셨는데 기어이 독립은 보지 못하시고 타지에서 쓸쓸하고 외롭게 돌아가시게 두었습니다. 그리고 유해봉환을 통해 고국의 땅을 밟으셨는데 이런 모욕까지 당하게 만든 이 시대가 정말로 부끄럽니다.
누가 이제 독립운동을 하겠습니까....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ofk59taVqY&t=21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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